본문 바로가기
써 내려가다

20161122

by 냠뇸냠 2016. 11. 22.



내 주변이 아닌 다른 사람의 주변 사람을 이렇게 싫어하게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정말 극혐인 쓰레기가 생겼다.

예전에 신경쓰였던 하나는 이제 본인짝이 생겨 그 쪽에 집중하느라 잠잠해진 거 같은데.

다른 하나가. 아.


개념도 없고, 예의도 없고, 나이만 먹었지 생각도 없고. 주변에 사람도 없고. 능력도 없고. 지 할일도 안하는 거 같고. 최악이야

난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절대. 내 주변에 그런 쓰레기가 꼬이지 않는게 감사하다.

내가 소중히 하는 사람이, 나를 소중히 하는 사람이 힘들게끔 하는 그런 사람. 주변에 없어서 참 다행이다.

내 눈에 뻔히 보이는 데 다른 사람눈에 보이지 않을 땐 그냥 말하지 않고 만다. 좋아하는 사람이고, 좋은 점이 보이는 거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알게끔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그냥 만다. 괜히 나쁜 사람되고 싶지 않으니까. 내가 안보면 그만이니까. 내가 안좋게 보는 사람을 좋게 보는 사람도 언젠가 그 사람을 제대로 알게되거나 아니면 똑같은 사람이니까 그 때가서 그 사람도 안 보면 그만이니까.

근데 끊어버릴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사람이 정말 아니다 싶은 사람에 대해 별 생각이 없으면 답이 없다. 그래서 끊을 수 없는 관계는 만들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잃을 게 없는 사람이 용감한게 그 이유겠지. 그런데 예외가 항상 생기는 게 문제다. 약자가 된다. 뭐든지 예외가 있기에 문제가 생기고, 분석방법이 생기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거다. 차라리, 공학문제는 낫다. 그런데 그게 인간관계가 되면 너무 힘들다. 답이 없다.


연인관계는 친구보다 못 한 사이. 친구로 남는게 낫다. 평생볼 수 있으니까라는 말은 겁쟁이들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는 건, 타인의 연인관계를 밖에서 보면서 기회를 노리는 그 '친구'라는 존재도 있는 거다.

그 쓰레기를 핑계로 나의 사람과의 관계를 재고 할 순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쓰레기를 언급하는 것 조차 싫다. 관계에 침묵이 오는 것도 서로 기분이 상하는 것도 정말 싫다. 그러한 걸 노리는 쓰레기이기 때문에. 하지만 쓰레기가 있어 파리가 꼬이고, 썩어들어가며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치워야 한다. 치우려면 언급해야 한다. 해결하려면 이야기해야 하고 밖으로 꺼내야 한다. 내 생각을 말한 걸 그 쓰레기가 들으면 그 쓰레기는 날 이상한 사람을 만들거라는 거 뻔히 안다. '그런 거 전혀 아닌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군대?ㅋㅋㅋㅋㅋ', '우와, 너 진짜 힘들게 만나는 구나'. 전형적인 쓰레기들의 사고작용이고 멘트이고. 본인이 문제라는 걸 자각하지 못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하고 '그런가?'라고 생각하게 끔 만드는. 

그래서 나의 상대방이 알아서 깔끔하게를 기대하지만, 쓰레기가 나로 인해가 아니라 본인이 직접 치워버리길 바라지만. 그런 쓰레기는 본인이 당사자에게 깔끔하게 잘려야 제대로 치울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아 얘는 아닌데, 그 옆에 누구때문에 그러는 구나. 아 난 또 뭐라고 괜히 걱정했네. 뭐 나중을 노릴 수 있겠네. 지켜보자'라고 하겠지.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 사람이 타인을 언급하며 이야기 하면 의도는 전혀 없더라도 그런 뉘앙스를 풍길 수 있으니까. 내가 '오늘 청소해야지!'하는 마음으로 청소하는 것과 누군가 저기 좀 깨끗히 치워라고 해서 치우는 결과물은 다를 수 있으니까.


사람이 쓰레기가 되는 건 타고난 쓰레기인 경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깨끗한 곳에서 깨끗한 것들은 떠나가 쓰레기만 남거나, 아니면 애초 쓰레기통안에서 내내 있었기에 쓰레기인지 자각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경우건 답이 없다. 진짜 쓰레기와 쓰레기통과는 다르게, 신이라는 존재가 있지 않은이상 그런 쓰레기더미와 쓰레기통으로 표현될만 한 사람들과 집단을 깨끗히 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이 나오는 거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나는 내 주변 사람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초라하고, 볼품없게 전락시키고 싶지 않기에 난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한다. 그래서 타인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지 않으며 살 수 없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은 거 알고 있다. 감사하게도 내 주변엔 그런 사람이 없다. 한 친구의 말마따나 나는 이야기하고하다 안되면 그런 사람들은 다 쳐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데 내 직접 옆이 아닌 건너서 쓰레기들을 보곤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스스로 떳떳하게 사는게 손해보는 거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난 항상 더러운 것들을 치워야지 모두 더럽게 만드는 것을 답이라고 당연하게 여기는 건 최악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 직접 주변이 아니라 내가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일 때는 너무 힘들어진다.


하나가 신경쓰여 버리면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내 성격을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는 게 힘들다.

그런 성격 때문에 남을 힘들게 할까봐 항상 두렵고, 이번에도 두렵다.

너무 고마웠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선 확실히 긋겠다'고.

믿음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엄청난 거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을 깨지지 않게 해준다는 건.

그 사람도 대단하고.

 

하지만, 좋은 걸 알아보는 건, 보석을 알아보는 건 고수와 장인 뿐 아니라 도둑놈과 범죄자들도 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물건은 본인의 의지가 없어 장인과 도둑놈을 구별할 수 없지만, 사람은 아니니까.

내가 믿는 사람을 믿어야지. 자꾸 언급하지 말아야지. 제대로 하겠다고 했으니까. 믿어야해. 불안해 하지 말자.

쓰레기의 게임에 넘어가 그 급이 되지 말자. 쓰레기는 치우고, 태우고, 쓸어버리면 되니까. 쓰레기가 옆에 있다고 벌벌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 갑작스런 소식들의 향연이다. 어제, 오늘. 좋은 일이 아닌게 문제. 내일은 또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 총학 투표기간이라 소중한 나의 한표를 행사했다.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먹을 거니 공책이니 나눠주는 건 우스운 거 같다. 학교와 선본들 스스로를 우습게 만드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본인들이 신뢰를 쌓았으며, 학생들에게 학생들의 손익과 관련이 있다는 걸 체감하게 한다면 누가 투표를 안할까. 어디서 어쭙잖은 노래나 부르고 춤이나 추고, 어떻게든 투표율 50%만들어서 개표를 하게끔 하려는 거 보면 최악이다. 정말. 투표율 50%가 안되면 투표기간을 늘리는 것도 우습고. 학교 측에서 그걸 묵인해주는 건지 종용하는 건지 그것도 우습고. 뭐 여러모로. 대학은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말을 지난해부터 체감하고 있다.











'써 내려가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년의 12월 마지막주가 지나고  (0) 2017.01.01
2016년 12월의 넷째주를 겪은 후  (0) 2016.12.25
넬 - 3인칭의 필요성  (0) 2016.08.30
언어의 중요성 + 속해있는 집단의 중요성  (0) 2016.07.21
불쾌  (0) 2016.07.18